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장 7-10절)
의인으로 칭찬받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구동성(異口同聲) 똑같은 말을 합니다. “누구라도,당연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겸비(謙卑)한 모습이 역시 의인(!)이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무익(無益)한 종’이라 말하며 당연한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손경민 교수의 ‘은혜’라는 찬양가사에 보면,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은혜라 말합니다. 은혜를 알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연한 것이 됩니다.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교회연합주일입니다. 아울러 한 주일 당겨서 남신도주일을 겸해서 드립니다. 하나가 되어 연합하는 것, 평화를 일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 3b).”
그런데 세상은 주 하나님의 뜻을 막아섭니다. 하나될 수 없도록 분열(分裂)시킵니다. 마귀들이 하는 행태이니, 그 주역을‘섭섭마귀’라고 부릅니다. 한 가정을 깨뜨리고 이혼하게 하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성격차이(?)라고 말하지만, 서운한 것, 섭섭한 것이 있는데, 대화로 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동체, 혹은 기관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이유,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혹시 서운해 할 일을 아예 만들지 말자!’라는 자기방어적 생각으로, 섭섭하지 않기로 결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겠노라 다짐한 그리스도인은 섭섭하지 않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죽었는데, 무엇이 섭섭하겠습니까?
본문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상황입니다.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쉬고 싶은 마음 간절했을 것인데, 주인의 식사를 준비하고 수종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밥을 먹고, 쉼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라도 “수고했다!”라고 격려해주면 좋으련만,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9)”반문하기까지입니다. 탕자의 비유(눅 15장)를 생각하면 이해는 됩니다. 일할 수 있는 것도 은혜, 수고를 마친 후에 식탁을 대할 수 있음과 쉴 수 있는 집이 있음도 그저 감사입니다. 이런 상황을 뒤로하고 주인을 비인간적이며,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우리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지금&여기에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으나,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은혜를 고백하며,‘나는 곤고한 사람(롬 7:24)’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도 감사한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으니, 섭섭할 틈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에서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존경받는 목회자가 있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만,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주님만 홀로 높임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겁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기까지였습니다(빌 3장). 예수님이 오신 이유? 지난 주 말씀드렸던 것처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회와 가정,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논리와는 다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랑하고 섬기는 곳입니다. 가진 자가 오히려 더 희생하고, 낮아지는 곳입니다. 그러면서도 자랑하지 않으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하는 곳입니다. 섭섭하지 맙시다. 당연히 할 일이라 말합시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겁니다.
